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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이계순

한줄이야기

세상 풍파를 은은하게 받아내며

등록일

2019-08-09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09 조회수 : 688
첨부파일 첨부파일 : 5-고성1-이계순3.png (130.4 kB)


1928년 3월 18일 함경북도 나진에서 경상도 출신 부모의 2녀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18세 되던 1945년 충주 출신 김차영과 결혼했고, 1946년 4월, 남편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 1958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일대(민통선)에 시행된 1차 <난민정착사업>에 참여한 1세대 50가구 중 유일한 생존자이다. 3남2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녀 나이 42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민통선 지역의 공통 사안인 경작자와 소유자간 토지소유권 분쟁으로 땅 전부를 잃고, 임차농으로 전락했다. 큰아들을 제외한 2남2녀의 자녀를 각처로 내보내고 농사를 지었으나, 낙후된 농촌을 살리기 위해 도입된 정부 정책으로 외려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빚을 갚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상경, 막국수 식당을 운영하는 집에서 남의 집 살이를 했다. 이때 배운 기술로 마을이 생긴 이래 최초로 간판을 건 식당을 운영했다. 금강산 관광 특수로 한때 돈도 크게 벌었지만,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와 7번 국도가 마을 외곽으로 뚫리면서 졸지에 식당을 접게 되었다. 이계순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굴곡진 우리의 현대사가 궁벽진 민통선 마을의 한 평범한 여성의 삶에 어떻게 아로새겨져 있는지 알게 된다. 당대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는 것이다.

‘삶의 풍파에도 훼손되지 않는 본성이란 것이 있나보다.’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분위기와 말투가 순하고 고우신지라 마냥 평탄하게 살아온 인생인 줄 알았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남 탓도 하고 원망도 할 법 한데, 그 사람 사정을 먼저 살피신다. 술 한 잔 걸친 이웃 아낙네의 장난에 허리를 다쳐 곱사등이처럼 등이 굽었지만, 그에 대해서도 일체의 원망 섞인 말씀이 없다. 어르신을 생각하면 채송화 꽃이 떠오른다.